저자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영시의 아버지이며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데 그는 인간의 본성과 내면세계를 꿰뚫어보는 혜안(慧眼)과 함께 당시 사회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시대적 감각을 지닌 작가였다. 중세사회의 전모를 투영하고 있는 『캔터베리 이야기』는 단순한 문학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중세세계를 이해하는 필독서이다. 생생한 묘사력과 기지. 해학. 풍자. 야한 입담이 어우러진 초서의 이야기는 세계문학사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된다.
줄거리는 성 토머스 베켓의 성지 캔터베리 성당으로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서로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순례자들은 템스 강 남쪽에 있는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모인다. 이 여관은 캔터베리로 가는 여행이 시작되는 곳으로, 여기서 출발하여 런던 교외를 지나 캔터베리로 가면서 순례자들은 각자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유쾌하고 음탕한 것에서부터 아주 도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우며 그 속에는 중세 영국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의 희비극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0〜1400)는 ‘영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질 뿐 아니라, 근대영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영어의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제법 부유한 주류 상인의 아들로 1340년 런던에서 출생한다. 부친인 존 초서(John Chaucer)는 에드워드 3세 치하의 궁정에서 궁정 내의 주류를 취급하고 관리하는 직을 맡고 있었다.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357년부터 시작되는데, 십대인 그는 울스터 백작부인(Countess of Ulster)의 시종으로 귀족사회 및 궁정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그는 궁정교육기관인 ‘Inns of Court’에서 교육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Inns of Court’는 귀족이나 부유층 자녀들이 궁정관리가 되기 위해 거치는 특별한 교육기관으로 일반교육과 법교육이 이루어졌었다. 1366년 초서는 여왕의 시종인 필립파(Philippa)와 결혼한다. 필립파의 자매인 캐서린 스윈포드는 나중에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며 당시 영국 내 최고 실력가였던 곤트의 존(John of Gaunt) 경(卿)의 세번째 아내가 된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후에 존 경은 초서의 후원자가 된다. 궁정에서 초서는 여러 가지 직책과 업무를 맡기 시작한다. 궁정 내의 또 다른 그의 역할은 궁정의 여흥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재담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368년에는 중요한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왕의 향사라는 직책을 맡게 된다. 같은 해 그는 초기 대작인 공작부인의 서(The Book of Duchess)를 내놓게 된다. 그는 1370년 이후 국왕의 외교특사로서 유럽을 빈번히 여행하면서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받게 되어 그의 애독서인 장미의 로망(Le Roman de la Rose)을 번역하게 된다. 곧이어 그는 외교사절로서 그의 생애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다. 1372년에서 1386년까지는 그에게 있어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기라고 불려지며, 특히 단테와 보카치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새들의 의회(The Parlement of Foules), 트로일러스와 크리세다(Troylus and Crideyde), 철학의 위로(De Consolation Philosophiae)를 완성하게 된다. 1374년 런던항의 세관리로 임명된 초서는 런던 동쪽의 올드게이트(Aldgate)에 기거하며 정부관료 및 외교사절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된다. 1385년 그는 캔트의 치안판사로 임명되고 1386년에는 캔트 대표로 의회에 진출하게 된다. 이와 같이 관직에서 승승장구한 초서이지만 한때 궁정의 권력 이동으로 모든 관직을 일시 박탈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387년 부인이 죽자 그는 자신의 천직인 시작(詩作)에만 주력하게 된다. 이때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의 혼합기로서 독특한 영국적 문학이 싹트는 시기이다. 이때부터 그는 죽을 때까지(1386~1400)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집필하게 되지만 이 작품은 끝을 맺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게 된다. 1400년, 그는 생을 마치게 되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는데, 그를 기점으로 훗날 유명한 시인, 문인들이 그곳에 묻히게 되어 그곳은 ‘시인들의 묘역(The Poets’ Corner)’으로 불리게 된다.